시작만 하고 끝을 잘 못내는 제 ㅈㄹ근성상;; 참 드문 일이었지만...... 주말엔가 반쯤 남았던 걸 후다닥 다 읽어버리고는 왠지 먹먹한 마음이 되었었던게 아직 기억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적어놔야지' 했던 것도요. 그래서 기록하는 포스팅!
콜린이 녹음한 짧막한 샘플 나레이션을 듣고 호기심에 집어든 책이었고, 보이스 샘플 관련으로 포스팅 할 때엔 책소개의 줄거리 정도만 알고있던 시절이라......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라져 당혹했던 기억이 제일 강하게 납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콜린에게서 보고있던 이미지는 '완전 순수'랄지, 추락하는 거라 해도 자기 속의 무언가라기 보다는 밖의 이유가 더 큰...뭐? 그런 것이었던지라, 챕터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사건의 묘사와 주인공의 충동적인 성격, 사건들이 그에 비해 너무나 적나라하고 파괴적이었던 게 문제였던 것이죠. 흠, 이렇게 따지면 애초에 멋대로 상상해버린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얽혀진 성적 학대며 충동, 알코올리즘과 자기파괴적인 행동들의 서술이, 묘사 자체는 적나라하지 않다지만 1인칭인 탓에 상황이나 감정이 극명하게 드러나서 그런지 꽤나 충격적이었어요. 그런 의미로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18세 이상 독서가능ㅋ 딱지를 주고싶을 정도입니다ㅠㅠ 너무 암울해서...
콜린이 읊는 장면은 중후반즈음으로, 재활치료중, 아마도 약효과로 오락가락하는 속에서 떠올린 생각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부분인데, 자신의 유년시기로 퇴행한 듯한 어조로 지금 무기력해진 상황을 서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책 대부분이 장년시기의 시점으로 서술되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로 이 부분은 콜린이 맡아도 그의 아직은 어린듯한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을 부분이었어요.
그렇지만 다 읽고나니, 다시한번, 다른 의미로 콜린이 전부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습니다.
사족으로, 다 읽고나서 찾아보니, 이 알수없었던 작가 존 린치씨는 바로 그 배우 존 린치! 멀린에서 멀린 아버지 발리노어역을 해주셨던 그 배우였습니다. 허어, 작가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뒷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죠. 여러모로 다재다능하신 분이구나 싶어 감탄. 그렇게 생각해보면, 멀린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콜린이 그의 작품을 샘플로 녹음한 것일려나? 싶기도 해 문득 즐거워졌습니다. 정말 가지치기로 많은 걸 주워담게되는 덕질이군요!
주인공 가브리엘 오로어크(Gabriel O'Rourke)는 천사의 이름에서 딴 그 이름이 무색하게 정말이지 바닥 끝까지 추락한다. 초반에는 주로, 교사라는 왠만큼 안정적인 직업과 번듯한 가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저히 그 '정상'속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뇌하는 모습과, 그 내면의 괴리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언듯언듯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과거 회상들이 뒤섞인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가 결국 어떤 시설에 수용되게 된다는 걸 암시하는 듯 병실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세 장면들이 뒤섞여 진행되므로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각각 소제목으로 구별지어진 짧은 챕터들은 각각 그 나름의, 장면의 완결을 느끼게 해 줘서, 특유의 묘한 건조함과 여운, 여백과 리듬을 잘 살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되돌아본다면, 처음 두서없었던 사건들이 점차 긴 호흡의 재활시기에 자리를 내어주는걸 확인하며 그동안의 그 단편적인 기억들이 결국 그의 회상 그 자체였던게 아닐까 하는 암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1인칭 시점이 가지는 힘을 최대한 끌어낸 듯한 인상을 받았다.
초반에는 그의 어린시절의 가정사가 조금씩 소개된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브리엘이 어렸을때부터 이미 알코홀릭에 집에와서는 폭력을 일삼기 일쑤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물론 가브리엘과 그 여동생에게까지 악마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편, 벗어날 길 없는 그 폭력 만큼 가브리엘을 궁지로 모는 건 어머니의 맹목적일 정도의 광신이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그런 학대를 일삼는데도 어머니는 그저 종교라는 혼자만의 낙원에 머물며, 어린 가브리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구원만을 부르짖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녀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인 양, 끊임없이 믿음을 강요한다. 심지어 그는 아직 그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뒤늦게서야 가브리엘은 그것 또한 그녀만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유일한 도피처였다는걸 어렴풋이 이해한다. 하지만, 악마의 방문을 받는 밤마다 어머니의 그 전능한 '하나님'께 도와달라 기도했지만 전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그의 실망과 혐오는 너무나도 뼈저리게 이해된다.
중반에서는 본격적으로 그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생활 속으로 과거의 망령이 조금씩 파고들어, 이미 그게 예정되었던 것 처럼 무력하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긋나는 그 일상과의 괴리, 상처들에서 오는 비뚤어짐이 점점 쌓이고 쌓이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술에 너무 의존하게 된 그는 술을 마신 채 학생들을 지도하다 결국 학교에서 퇴출당한다. 평판은 이미 휴지조각이 된 후지만, 그 뒤로 다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술의 구덩이에서 허덕인다. 자신의 아들이 생겼음에도, 올바른 아버지상을 갖지 못한 그에게는 그 상황이 그저 알수없는, 누군가 정해놓은 정상적인 생활, 기대를 들이미는 굴레일 뿐이다. 지독한 피해망상과 자기파괴적 충동 속에서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폭력적 성향은 다시 그의 가정으로 돌려지고, 결국 아내와도 결별. 여동생 가정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실패한다. 이 모든 과정들은 제삼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이없을 정도로 부도덕하고, 나약하고, 패배주의에 빠져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자신이 접하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화자 가브리엘 때문에 그런 것쯤은 무시하게 되버린다. 그 이야기 공간 안에서, 독자는 아마 그를 이해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그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을 견디지 못해 병원을 뛰쳐나온 그는 술을 마시고 접대부를 산다. 그런 말도 안될 정도로 부도덕한 상황이 얼마나 서글프던지. 결국 그를 동정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가를 대단하다 해야 할지...
어쨌든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다. 중반부는 그와 함께 계속 지옥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이었기에, 더욱 바닥없는 늪에 빠져드는 기분.
후반부에서는 주로 그의 재활병동 생활이 그려진다. 길바닥을 전전하며 구제할 길 없는 술쟁이로 죽어가던 그에게 마지막 찬스가 찾아온다(그것도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처럼 정말 예기치 않았던 제삼자의 도움이라 해야할까...). 병원에서 다시 '살아났'을때, 그는 고마워하기는 커녕 여전히 비뚤어진 영혼 그대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끈질기게 그의 멘토가 되어준 전 알콜중독자이자 전문 카운슬러인 타데우스의 인도와, 시설 안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브리엘은 조금씩 다른 길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었던 지옥과 다시 마주하고, 다른 이들의 지옥을 바라보면서 암울하기만 했던 상처들에 빛을 쪼이기 시작한다.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술이라는 악마와 만나서 결국 시설에 갇힌다. 몇은 그 안에서 회복하지만, 몇은 하지 못한다. 몇은 회복했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가브리엘은 그 어떤 사람도 곧 자신이 될 수 있었음을, 그리고 자신도 그들 중 하나라는걸 깨닫는다.
그의 삶이 그 이후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그의 머릿속을 따라온 긴 챕터들 끝에 나도 어느새 그 안에서 나를 본 기분이다. 그가 자신의 지옥까지 가게 만든 가장 큰 잘못은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가진 것이겠지만, 그건 우리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I know now that no-one chooses to be in pain. It is sometimes given to them when they're born and it can take a whole lifetime to shake free of it."
"I know now that this is my story, and that others have theirs. And your story will always ask questions of you, and it will keep asking you until you reply. We are all broken, we all need fixing. Some people never heal.... Maybe I will fall again, I don't know.
...I realise that for so much of my life I have missed these things the glow in someone else's eyes that says that the world is not as lonely or as terrifying as you th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