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Merlin] 할로윈의 모험! (3/?)
의외로 빈틈없이, 정교하게 쌓아올려진 돌 벽. 그 반대편으로 하얗게 칠해진 벽 위에 걸려진 장식용 칼과 붉은 휘장은 꽤나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침대며 가구도 심플하지만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것들이다.
존은 한동안 방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보았지만, 금새 다시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이 활짝 열린 창문쪽으로 돌아갔다. 손님용 방 내부는 학교시절 체험학습때 박물관에서 봤었던 고성 내부 재현실과도 닮아있었지만, 창문 바깥은 정말이지 새로웠기 때문이다. 창틀에 몸을 걸친 존은 탄성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성벽까지 뻗어있는 건물들이며, 나름 일정한 구획을 가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특히 그 사이를 오가는 여러가지 복장의 사람들. 마치 거대한 영화 촬영 세트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촬영트럭이니 스텝들의 모습따위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 이건 진짜였다. 벌써부터 저녁 준비들을 시작하는 것인지 빵 굽는 냄새와 지붕에서 오르는 연기들이 이따금씩 피어올랐고, 그 너머, 성벽 너머로는 추수를 마친 밭이 펼쳐졌다. 그림같은, 중세 어느 해의 가을 풍경이었다.
숲에서 그 소동이 일어났을 무렵에는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지만, 여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말 그대로 '다른 세계'. 하지만 으레 그렇듯이, 워낙 당황스러운 일들은 머리로 안다 해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랬기에 존은, 숲을 마악 벗어났을 무렵 지하철이나 택시는 커녕, 시야가 닿는 범위 안에 도로나 고층건물의 그림자 한뼘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반쯤 공황상태에서 다짜고짜 기사들에게 자초지종을 추궁하려던 존의 시도는, 다행히도 셜록에 의해서 간신히 제지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셜록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갑자기 런던 어딘가의 우물에 빠졌는데 과거로 와버렸다고, 무슨 일이냐고 추궁한다면 분명 그나마 쌓인 신뢰가 없어질 것은 물론 더 안좋게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가능한 일이다(분명 자신도 무시하거나 병원에 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초유의 상황에서 냉정하나 잃지 않는 셜록의 모습은 역시나 놀라웠다. 사실 존 스스로도 파병 경험이며 산전수전을 겪은 탓에 왠만한 상황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이건 절대 예외라고 할 수 있었다. 예외중의 예외. 차라리 런던 근교에서 총알이 날아든 상황이라면 이것보단 덜 놀라웠을 게 분명하다.
어쨌든 그렇게, 숲에서 만났던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는 진짜라는게 드러났고, 아서의 친절한 초청 덕분에 존과 셜록은 여행자로서 카멜롯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아직도 어떻게 자신들이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전혀 쓸만한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의 놀라움까지 막지는 못했기에 존은 질리지도 않고 창 밖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방문에서 처음으로 노크소리가 들려왔을 때에도 거의 무시할 뻔 하고 말았다.
"좀 쉬셨습니까?"
"아, 가웨인...경?"
두번째인 탓에 더 씩씩(?) 해졌던 노크소리에 달려가 급히 문을 열자, 가웨인이 서 있었다. 아직 '경'이란 호칭을 붙여야 한다는게 꽤나 어색했던 탓에 조금 주춤하고 말았지만, 그는 언짢은 기색은 커녕 씩 웃으며 말했다.
"사석에선 굳이 그런거 안 붙여주셔도 됩니다. 어짜피 다들 그러니까."
정말이지, 평소 웃음소리 만큼이나 성격까지 호쾌한 사람이라고 존은 다시한번 생각하며 대답대신 웃어보였다. 어릴적 책에서 읽은 얄팍한 기억에 의지해, 가웨인이라는 이름만 듣고 떠올린 불같고 강인한 전사의 이미지는 막상 그 본인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 깨진지 오래였다. 싸울 때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그 긴장감없고 능청스런 태도란... 전설의 원탁의 기사라기 보다는 친근한 이웃청년 같은 이미지랄까? 그래도 제법 잘생긴 얼굴이니, 현대에 태어났으면 모델 같은 걸 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하하, 그렇지만 '경'을 안 붙여도 될 사적인 일로 오신건 아닌 것 같은데요, 가웨인."
그렇게 말하자 가웨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존의 말에 동의하듯 여전히 갖춰입은 갑옷을 내려다본 그는, 앞으로 흘러내린 붉은 망토를 거슬린다는 듯 어깨 뒤로 젖혀버린 후, 방 안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제법 날카로우신데요. 음, 형식적인 거지만, 회의실에서 접견례와 더불어 간단한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공식적으로 인사도 하고 정보도 나누자- 같은 거죠. 일단 두분은 외국인이신데다 왕의 손님이기도 하니까요. 그나저나 옷은 맘에 안 드셨습니까?"
그제서야 가웨인의 시선이 침대위에 그대로 놓여진 옷가지에 가있다는걸 알아챈 존은 난처한 웃음을 띄웠다.
"아... 그게, 어떻게 입는지도 모르겠고......"
"저런, 시종이 그냥 놓고만 나간 모양이죠? 그럼 지금이라도..."
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정말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부를 기세였기에 존은 하는 수 없이 마음속에 떠올렸던 더 근본적인 이유를 털어놓았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아무래도 어색해서..."
사실 성까지 들어오는 길에 마주쳤던 사람들이 신기한 것이라도 본 양 흥미진진한 시선을 보내던 때엔 당장이라도 이 눈에 띄는 옷을 갈아입고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또 막상 이 낮선 곳에서, 어쩌면 한동안은 유일한 지참품이 될 지도 모르는, 정든 옷가지를 벗어던지자니 완전히 무장해제 되는것만 같은 저항감이 들기도 했다. 늘상 활동하던 복장이라 이쪽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어찌됐든 아직은 그렇게까지 마음이 느긋해지질 않았다. 그리고 확실히, 튜닉은 그렇다 치고, 긴 가죽 베스트의 조임새는 혼자 처리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무언가 물어보고싶은게 많은 눈치'였던 시종에게 도와달라고 하긴 또 어색했다. 그래서 존은, 이것저것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듯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외국인이니, 어떻게보면 이대로 가는게 더 걸맞는 예의 같은데요."
그 말에 가웨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군요. 그럼 그냥 갑시다. 옆방에도 들러야 하니까."
***
결국 옆 방의 셜록을 데리고 알현실 홀에 섰을 때에는 둘 다 그 복장 그대로인 상태였다. 셜록도 방에서 그들을 맞이할 때, 여전히 밑자락에 흙이 뭍은 코트차림 그대로였던 것을 상기해보면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했지만... 또 한번 낮선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존은 아무래도 갈아입고 오는게 좋았을까 하고 다시 고뇌에 빠진 한편, 셜록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태연했다. 평소에는 저런 뻔뻔할 정도로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셜록의 신경에 넌더리를 낸 적이 많았지만, 지금은 저런 태도를 최대한 채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신기하면 실컷들 구경하라지. 존은 의식적으로 어깨를 폈다.
"분부하신대로 모셔왔습니다."
"수고했네. 가웨인 경."
아서는 앞자리의 의자에 앉은 채 가웨인에게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가웨인이 기사들이 서 있는 쪽으로 가 서자, 아서는 꿔다논 보리자루처럼 가운데 멀거니 서있는 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느 기사들과 같은 복장으로 그리 화려하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홀과 더불어, 그런 정경들은 존의 부풀려졌던 예상과는 달랐지만, 그 덕분에 그의 긴장을 조금 덜어주고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본격적인 행사는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모두의 앞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의 모습은 확실히 기사들 사이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카멜롯을 대표해 그대들을 환영하오. 그대들이 우정을 증명해준 만큼, 우리도 그대들을 친구로 생각할 것이니 여행길에 필요할 도움과 충분한 휴식을 취하길 바라겠소."
"과분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예의를 차려 얌전하게 대답하는 셜록의 모습이 왠지 새삼스러워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올 참이었지만, 존은 그걸 참으며 간신히 미소 비슷한 것으로 바꾸었다. 다행히도 그 미소를 같은 의미로 해석한 듯, 아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카멜롯은 처음이라 했지. 직접 보니 어떻던가?"
"도시가 잘 정비된 데다가 활기가 넘치더군요. 과연 명성에 걸맞는 곳입니다."
"흠? 그대들의 나라에도 카멜롯이 알려져 있는가? 꽤 거리가 멀다고 들은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이상적인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요."
존은 그 문답을 들으면서 슬쩍 긴장하고 말았다. 겉보기에는 전혀 무리없는 답변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진짜' 어디서 왔는지를 상기해보면 조금 찔리는게 사실이었다. 셜록을 흘깃 옆눈질해보자, 그는 (기분탓인지)조금 짖궂어 보이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놀랍고도 기쁜 일이군. 그대들이 이곳을 알고 있는 것 만큼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게 아쉬운데. 자네들의 소개에 덧붙여서, 런던이란 나라는 어떤 곳인지 조금 이야기해주지 않겠나?"
그래서 그 뒤로 둘은 한동안 '런던'이라는 나라에 대해 설명해야했다. 오는 길에 이미 한차례 질문세례를 했던 기사들은 대부분 조용했지만, 대신들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놀라움 섞인 질문을 해왔다. 아서는 본인이 이미 들은 것들이 반복되어도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듣도보도 못한 특이한 나라의 소식을 접하게 하는 것이 확실히 이 자리의 목적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셜록과 존은 최대한, 지금 상황에서 허황되게 들릴만한 사실들은 축소하고 솎아내가며 설명하려 했고, 아무래도 첫번째 시도, 즉, 이전 기사들에게 한 설명보다는 좀 더 그럴싸해졌다는걸 느꼈다. 많은 생략과 변경 덕분에 완전히 다른 어떤 가상의 나라를 설명하는 것 같이 되어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왕이니 의회니 하는 언급에는 역시 기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척 호기심어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공주가 왕위에 올랐다는 거요? 게다가 통치한지가 60년이 넘었고?"
"믿기 힘든 일이지만... 대단한 여인임에는 틀림없겠구려."
존은 사실 실질적인 정무는 총리가 하고 그들은 임기가 제각각이라는걸 덧붙였지만, 그 개념은 그들에게 셜록의 직업 만큼이나 꽤나 이상하게 들린 것 같았다. 여왕이 있는데 섭정을 세울 리는 없으니, 그럼 총리라는건 시종장이나 보좌관 같은 것이냐는 질문에,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존은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그저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체제를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있었고, 그걸 다 설명하기는 애매했으니까. 어쨌든 왕 대신 여왕이 통치하는, 꽤나 안정된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만 해도 모두에게는 충분히 이색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았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대강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아서가 폐회와 함께 이만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알리자 둘은 겨우 끝났다는 심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안도의 순간 후, 자기들도 그냥 돌아가면 되는 것인지, 이후의 거취에 대해 슬슬 고민이 밀려오기 시작할 즈음, 아서가 앞으로 다가왔다.
"거참, 생각보다 오래 끌었군. 고생했네. 그나저나 방들은 마음에 드나?"
그들이 그렇다고 답하자, 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피곤할테니 오래 잡지는 않겠어. 잠시 그대에게 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아서가 자신을 바라보자 존이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 둘러대야할 질문이라면 셜록이 더 잘 할텐데-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집어 말하자 별 수가 없었다.
"무엇입니까?"
"다른게 아니라..."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아서는, 주위에 아직 흩어져 서 있던 몇몇 기사들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대에게 기사 작위를 내릴까 하는데."
"네?????"
존은 정말 꽤나 놀랐다. 너무 갑작스런 발언인데다, 왜 갑자기 그런 제안이 나오게 되는건지도 도저히 감을 잡을수가 없었던 탓이다. 자기가 제대로 들은게 맞는지 확인을 구하듯 주변을 돌아보자, 아서 바로 뒤에 서있던 멀린은 제대로 들은게 맞다는 듯, 으레 그 사람좋은 미소를 띄고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셜록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뭘, 그대가 숲에서 내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아서는 더없이 명쾌한 해답이라는 듯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왜 그런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존은 여전히 얼떨떨했고, 막상 그때 상황을 생각해보면 기분은 더 묘해질 뿐이었다.
"셜록, 어쩔 생각이야!"
낮선 숲 속에서, 어떻게 피해볼 새도 없이 싸움에 휘말려버린 셈이 된 둘은 싸움터의 끝자락에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기사 제복을 입고있지는 않았기에 그들이 제 1차 목표물이 되진 않은 것 같았지만, 엉거주춤 서있는 그들을 눈치채고 달려드는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마악 달려든 한명에게 이번에는 직접 나무와의 격렬한 키스를 선사해준 셜록은, 기절해 드러누운 남자에게서 칼을 뺏어 존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되버린 이상 살아는 남아야 될거 아냐."
엉겹결에 칼을 받아들자 의외의 무게감에 존은 움찔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과 무게감이 무기로서의 기능성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총과는 또 달랐다. 총이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보장하는 무기였다면, 칼은 방어의 안도감보다는 공격의 불안함이 먼저 앞서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전투경험이 있다지만..."
이건 그 전투경험과는 완전 다른거잖아. 칼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니까, 애초에 난 이런거 쓸 줄 모른다고! 존은 그렇게라도 외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칼로 누군가를 찔러본적은 없단 말이다-! 으악!"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말을 들은 것만 같이 기막힌 타이밍에 두번째 적이 달려드는걸 본 존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반사적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상대는 존이 애송이라고 판단했는지 제멋대로 난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덕분에 안그래도 살벌한 인상을 더 험악하게 만든 그는 곧바로 칼을 휘둘러왔다.
"그럴리가, 의사 선생님이잖아."
검이 마주치자 둔중한 금속성의 소리가 울렸다. 어떻게 막아내긴 했지만, 칼에 와닿은 진동이 손까지 생생히 내려와 존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사이로, 농담인지 뭔지, 상황의 급박함에도 어딘가 긴장이 빠진 셜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몸을 굳게 했던 긴장대신 버럭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내리누르는 힘을 간신히 막아내며 쥐어짜듯 외치고 나자, 무게감과 남자의 험악한 웃음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셜록이 상대의 뒷통수를 내려친 자세 그대로였던 칼자루를 내리며 슬쩍 웃어보이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이 자신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뒤를 노린 모양이었다. 아아, 셜록의 신경줄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건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존은 힘이 쪽 빠지는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 속에서, 어떻게든 둘은 '살아남아' 가고 있었다. 존은 그 뒤, 차라리 칼 대신 방패를 주워들었고, 오히려 존에게는 그게 더 유효한 무기가 되었다. 셜록은 의외로 칼에 익숙한 듯 했는데, 아마도 펜싱도 제법 한다던 그의 말이 완전 허풍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막상 그대로 실용적으로 써먹고 있다기 보다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있다는 게 전부인 것 같아 보였긴 하지만.
어쨌든 그 뒤로 두명인가를 더 기절시키는데 성공하자 존은 거의 신이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은 몰랐지만, 어쩌면 싸움에 한해서는 호흡이 잘 맞는 편일지도 모른다- 존은 셜록과 눈이 마주치자 놀라움과 흥분이 섞인 너털웃음을 뱉어낸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숫자에서 조금 앞서있던 적들이 줄어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실력은 이쪽이 우위였던 모양이다.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다행히 이기는 쪽으로 정리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나서야, 바닥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이 존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피와 신음하는 얼굴들을 살핀 존은 아까의 것과는 다른 의미의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아까의 상황이 여름열기 속에 파도치듯 번지는 들불 같은 뜨거운 감각을 일깨웠다면, 지금 것은 차가운 기름 위에 퍼져나가는 불 같은 서늘함을 주었다. 둘다 이성을 흩으러뜨리는 불인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존에게는 후자가 더 익숙했다. 작열하던 사막의 태양 아래서도 느껴지던 서늘한 흥분. 그리고 그 감각은 옛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동료들과 함께 싸우던 시절의 기억을.
그때 마침 몇발치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아서가 존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혼자서 두명분이라도 하려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싸우고 있었기에, 존은 한동안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만나고 한시간도 안 지난 셈이었지만, 무슨 인연인지 존은 그의 싸움에 말려들어 이쪽 편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일지 아니면 옛날의 기억 때문일지, 그의 뒤에서 달려오는 또 한명의 적을 발견했을 때, 어디서 생겨난 용기인지 존은 거의 반사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으랴압!"
마악 쇄도해오던 남자는, 방패 하나에 온 무게를 실어 달려든 방해꾼 덕분에 보기좋게 나동그라졌다. 존이 힘조절도 계획도 없이 욱하는 마음에 달려들었던 탓에 둘은 두세번은 굴러가서야 간신히 멈췄고, 한동안 균형을 못 잡고 허우적거려야 했다.
"존!!"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눈에 별이 번쩍하는 기분이었다. 끙끙거리며 잠시 그대로 엎어져있던 존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셜록의 얼굴을 보고서야 간신히 정신을 수습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누군가에게 대뜸 싸움을 건 참이었다는걸 기억해내고 벌떡 일어서 자세를 잡았지만, 상대는 미동도 없이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돕겠답시고 뛰어든 상대가 무사한지를 확인하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아서가 놀람과 감동(?)이 섞인 표정으로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나는 건 그뿐이었다.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공을 세운것도 아니고,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던데다가 다만 운이 좋았구나 싶을 뿐인데...게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호기롭게 뛰어들어선 꼴사나운 몸통박치기를 선보여버린 자신이 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존은 좀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그렇지만 제가 한건 별거 없는데요."
"날 돕기위해 몸을 던지지 않았나! 그 용기가 바로 기사의 자질이야. 어떤가, 여행 대신 여기서 일해보는 건?"
용기니 기사니 하는 말에 존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무슨 어렸을 때 놀이하며나 들었을 법한 얘기잖아. 그렇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정황상 아서는 정말 그 '아서왕'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은 왕이고, 그렇다면 기사는 기사인 셈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존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동안 보았던 기사작위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떠올렸다. 절대 평범한 퇴역군인이자 의사인 자신에게 해당될 사항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거......
"뭘 그리 '오, 좋은데?' 하는 표정 하고 있는거야."
어...엄청 정확한 추리다. 의표를 찔린 기분에 존은 결국 허황된 망상에서 끌려나왔고, 셜록의 시선을 피하느라 헛기침을 몇번 했다. 그런 존을 보며 못말린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셜록은 평소의 그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기사작위 따위 받아서 뭐 하려고, 그리고 우린 곧 떠나야하는거 잊지 마."
그리고 그 말에 존을 포함한 모두의 눈이 경쟁이라도 하듯 커졌다.
"기사작위 따위?"
존이 셜록의 그 예상치 못한 발언에 놀라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을 때, 가웨인이 조금 당황한 투로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당신은 기사자리를 줘도 싫다는 거요?"
"그런 것 따위, 귀찮은 일을 공식적으로 시키겠다는 거나 다름없잖소. 이전에도 내 형이 그걸 빌미로 몇번이고 협박했지만, 난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일반인'에게 와서 부탁하는 상황이 되도록 하는게 더 좋거든. 유명세도 질색이고."
"셔...셜록...!"
"아, 실례. 이건 우리쪽 경우고, 당신들이 그렇다는건 아니었어."
아서와 멀린을 포함한, 그 말을 들을만한 거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참 볼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셜록의 오만함 보다는, 갑자기 쏟아진 저게 대체 무슨 말인지를 가늠하기 바쁜 상황이 아닐까 짐작하며 존은 탓하듯이 셜록의 팔을 꽉 그러쥐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셜록은 말을 번복할 기미따윈 전혀 없이 고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아, 신이시여...진작에 이녀석의 정신교육을 다시 했어야 하는데, 제가 그 벌을 받는겁니까? 존은 그 뒤에 일어날 반응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두려워하며 잠시 스쳐간 정적 속에 서 있었다.
"와하하하!!"
결국, 가웨인이 정말 희한한 놈들 다보겠다는 식의 눈으로 셜록을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호쾌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홀을 울렸다.
"형씨 정말 이상하긴 한데, 그 똥배짱 하난 맘에 드는군. 크흐흐..."
존은 의외의 웃음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다행히도 뒤따라 들려오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들에 간신히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태까지 느꼈던 거지만 참 관대한 사람들이군, 정말 다행이야.
***
황송하게도 방까지 배달된 저녁을 꽤나 허겁지겁 해치운 존은, 배부른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이미 져버렸지만, 횃불과 초들이 성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어서 생각보다 그리 어둡지 않았다. 초라는게 제법 밝은 거였구나-존은 새삼 감탄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앞뒤 생각없이 그 감상을 앞장서 가고 있던 멀린에게 전하자, 멀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런던의 성에서는 어떤 초를 쓰느냐고 물어왔다. 존은 뒤늦게 아차싶었지만, 그저, 잘 모르지만 이거보단 덜 밝은 것 같다고 대답한 뒤,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셜록의 웃음기 섞인 헛기침이 들려왔지만, 이번엔 가만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뒤로 대부분 조용한 가운데 가이우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따금씩 멀린이 여긴 어디고 어떻게 쓰인다는 둥 설명을 해주었고 그때마다 몇마디 대답하는게 전부였다. 셜록은 내내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조용했다. 아까 들었던 정보를 되새겨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조금은 얼빠진 기사작위 소동이 일단락되고 나서, 셜록은 결국 정보를 위해 진실을 조금 노출했다. 정확한 정황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희한한 힘 때문에 순간이동 같은걸 한 것 같은데, 그런 현상에 대해선 아는 게 없냐는 질문이었다. 셜록의 입에서 SF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순간이동'같은 단어가 나오자 존은 잠시 감개무량함을 느꼈지만, 아서가 정색하며 되물어오는 통에 그 감동(?)은 금새 흩어졌다.
"너희들, 혹시 마법을 갖고 있는건가?"
"푸핫, 마법..."
마법이라는 언급이 존에게는 무슨 실없는 농담인 것만 같았기에 피식 웃으며 무언가 대꾸하려 했었지만, 주위가 심상찮게 진지해졌다는 걸 발견하고 말을 채 잇지 못한채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런게 있기라도 한 듯한, 아니, 무언가 그 이상의 것이 뭉쳐진 단어를 건드린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 존이 말을 아끼고 있는 사이에, 셜록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건 듣도보도 못했으며, 원래 있던 나라에서도 물론 그런건 없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어떻게 신뢰하지?"
뒤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고, 셜록은 대답했다.
"만약 우리가 그 마법인가를 쓸 수 있었다면, 여기 이러고 있는 대신 벌써 어딘가로 가버리지 않았을까? 왔을 때처럼."
그 뒤로 별다른 말은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왠지 무거운 침묵만이 홀을 짓눌렀다. 조금 뒤 아서는 짐짓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연한 어조로 모두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머물러 있다가, 왕실 전속 의사인 가이우스라면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만나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나마 이곳에선 마법에 대해 알만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되서, 가이우스의 조수이기도 하다는 멀린이 그들을 안내해주게 된 것이었다. 아서의 추천이 맞다면, 이 모든게 의문투성이인 곳에서 그 가이우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그리고 꽤나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줄지도 몰랐다. 아니면, 애초에 자신들이 엉뚱한 곳을 뒤진 것만을 깨닫게 되고 끝나거나.
"셜록, 마법이라니...... 설마 그런게 진짜 있다는걸까?"
존은 의심을 잔뜩 섞은 채 낮은 목소리로 셜록에게 속삭였지만, 셜록에게선 한동안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기에, 존은 잠자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뒤에야, 그것에 대한 대답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셜록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불가능한 요소를 배제하고 난 후라면......"
아무리 믿기 힘든 것이 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 존은 이제 많이 들어 제법 익숙해진 그 문장을, 말을 흐려버린 셜록을 대신하여 마음속으로 끝맺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몇번 되새겨 봐도, 셜록의 머리속에 남았을 진실이 무엇일지는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
"가이우스! 손님이에요!"
멀린이 노크도 없이 씩씩하게 문을 열어재끼며 그렇게 외치자, 테이블에서 무언가 읽고있던 초로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독서용 돋보기 너머로 미간을 찌푸린 채 이쪽을 바라보던 그는, 그들을 알아봤는지 '오'하고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일어나서는 반갑게 안으로 맞아들였다.
"아까 접견실에서 봤습니다. 제법 특이한 직업들을 가지셨더군요. 여기, 셜록씨는 탐...탐정? 제가 단어를 제대로 기억한거면 좋겠는데요... 그리고..."
"존 왓슨입니다. 그냥 존이라고 부르세요."
이름을 깜박했던 듯 가이우스는 잠시 주저했고, 존이 재빨리 덧붙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존. 의사라고 하셨지요? 같은 의사로서 궁금한게 많군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가이우스에게 존은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도와달라는 듯이 셜록을 바라보자, 셜록은 그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끼어들었다.
"일단 정정하자면, 그냥 탐정이 아니라 자문탐정입니다. 그리고 학문적 교류도 물론 의미깊은 일이겠지만 조금 뒤로 미뤄주실 수 있겠습니까? 좀 급히 조언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가이우스는 흔쾌히 동의했고, 그들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우물에 빠졌던 상황까지 덧붙여 꽤나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시간적 배경은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멀린 일행을 만났을 즈음의 일은 멀린도 거들어 몇개인가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으며 존은, 자신들이 그렇게 얼빠진 모습이었던가를 되짚어보며 피식 웃었다. 설명을 다 들은 가이우스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린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흐음... 그런 현상은 여태 들은 적이 없는데..."
가이우스가 혼잣말하듯 그렇게 중얼거리자, 존은 기대감이 사라지는 감각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마법이 어쩌고 하며 대화 소재에 오르는 이런 희한한 곳에서도 그들이 겪은 상황은 예외적인 것 같았다. 존은 셜록도 자기만큼 실망했을거라 생각하며 흘깃 옆을 살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자코 테이블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나?"
한동안 이어진, 생각에 빠진 분위기를 깨고 셜록의 낮은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오자 존은 퍼득 고개를 들었다. 의외로, 셜록의 시선은 멀린에게 향해 있었다.
"저요?"
멀린은 갑작스러운 지명에 놀란 기색이었다. 가이우스도 조금 놀란 눈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멀린은 당황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로 옮기더니, 이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하하, 전 마법에 대해 잘 몰라서요..."
"그래, 이녀석 약초는 제법 알지만 마법에 대해선..."
둘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셜록은 미심쩍다는 듯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마법을 쓸 줄은 알면서 거기에 대해선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조금의 의견이라도 있을 거 아냐?"
그러자, 셜록의 그 말에 둘의 얼굴색은 갑자기 변했다. 무언가 무척 당황한 듯한 기색이었는데, 왜 그 질문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존은 뭐라도 도와주려는 심정으로 말했다.
"셜록, 아니라는데 자꾸 그러면 무안해 하는게 당연하잖아.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거야?"
그러자 셜록은, 이번엔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존에게 돌렸다.
"너도 같이 있었잖아, 존. 못 본거야?"
"뭘?"
"그때 네가 아서 구한답시고 뛰어들었을 때. 너랑 아서 구해준게 저녀석인데."
그리고 이번엔 존의 눈이 의아함으로 커졌다.
"뭐??? 내가 아서를 구한거잖아?"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존이 나머지 사람들의 상태에 신경쓰지도 못할 만큼 혼란에 빠져있을때, 갑자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서였다.
"잘 찾아왔군? 어때, 진전은 좀 있나?"
셜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진난만한 미소(평소 존의 의견으로는 소름돋는)를 지어보였다.
"아마도, 그게 마법이 맞다면 확실한 경험자가 있으니 괜찮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여기 멀..."
"으악!!!!!!"
갑자기 멀린이 소리를 빽 지르는 바람에 셜록의 말은 묻혔다. 그 서슬에 제법 놀란 듯,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치켜뜨고있는 가이우스를 바라보며 존은 그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몇번인가 말이 안되는 비명을 지르던 멀린은 허둥지둥 벌떡 일어나더니 아서를 향해 달려갔다.
"아서! 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멀린은 그렇게 외치며 아서를 문쪽으로 다시 밀기 시작했지만, 그에게 그 정도 힘은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거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뭐야, 안그래도 급한건 다 처리되서 이쪽에 들른건데?"
멀린은 절망적인 표정을 하며 잠시 미는 걸 멈췄지만, 이내 다시 더 열렬한 기세로 그의 등을 떠밀기 시작하며 말했다.
"어...음...아! 리온! 리온이 아까부터 널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걸 말하는걸 깜박했어. 뭔가 급한일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자 아서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리온이라면 아까까지 같이..."
"으아아! 뭔가 새로운 일이 떠오른 모양이지- 여튼 빨리 가봐! 애타게 찾고 있을거야!"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멀린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서는, 이쪽으로 시선을 옮겨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무언가 투덜거리며 결국 멀린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밀쳐졌다. 문을 쾅 닫은 멀린은 그대로 문에 기대서는, 굶주린 사자라도 쫒아낸 사람처럼 안도섞인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광경을 뜨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셜록과 존에게 풀이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서한테는 말하면 안돼요......"
존은 다시 온통 ???를 띄운 표정으로 돌아갔고, 셜록의 눈은 흥미로운 걸 발견한 듯 반짝이기 시작했다.
......
할로윈까지는 개뿔...-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