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 할로윈의 모험! (1/?)
(어라? 으억...! 여기저기...거미줄이! 콜록콜록!)
와아와아! 기념할만한(?) 제 첫번째 셜록&존 이야기입니다. 우와! 사실 빠진건 셜록이 먼저였지만 어느새 본진을 먹어버린 멀린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었었는데 결국 이렇게 한번은 저지르게 되는군요ㅋ;; 매번 뭔가 끄적여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묘하게 쓰기 힘들었던 탓도 있고(...)
어쨌든, 곧(?) 할로윈이고 하니, 그 전까지는 쓰려나ㅠㅠ 하는 헛된희망과 함께 올려봅니다. '밀린거 두고 무슨 짓이야!' 하실 분들이 분명 있으시겠지만 ㅠㅠ 제가 이렇지요 뭐...... 또 저질러버렸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아무쪼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함께해 주세요! ㅎㅎ
존이 간신히 방문을 열고 플랫에 들어섰을때, 주위는 무척 조용했다. 늘상 사건이 없을 때면 거실 어딘가에 널부러져 있기 일쑤인 플랫메이트는 아마도 외출한 모양이었다. 존은 들고있던 식료품 봉지를 잠시 내려놓고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가빠진 숨을 한번 골랐다.
그렇게 한 숨 놓는 동안 슥 둘러본 플랫은 조금 낮설었다. 요 근래에는 아무래도 환절기인 탓도 있어, 병원에서 일찍 퇴근하기는 커녕 오히려 초과근무를 해야 했었던 날이 많았기에, 햇살이 비쳐드는 플랫의 광경이 오랜만이었던 탓이다. 사실 오늘은 왠일로 환자가 눈에 띄게 줄어서 거의 돌려보내지다시피 한 처지였지만, 존은 만족하고 있었다. 일이 없는데도 바쁜 척 시간을 때우면서까지 시급을 더 받는건 원래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돈도 어느정도 모이기 시작했고, 아마 병원으로서도 그런 의견은 높이 살게 분명하다. 어쨌든, 덕분에 존은 오랜만에 느긋하게 장을 볼 수 있었고, 그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사버리고 말았다. 그 실수 때문에 오는 길이 꽤나 힘들었지만, 그 정도 불편함으로 짜증을 내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오후였다.
발치에 내려놓았던 종이봉투를 다시 안아든 존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식료품들을 테이블에 정리하며 꺼내놓는 동안, 아직 남은 오후시간을 뭘 하며 보낼까 하는 생각만이 존의 머리를 꽉 채웠다. 셜록도 없으니 조용하고 따분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셜록이 이른바 '쓸모없는 생산성 제로의 따분한 것들'이라고 정의내린 활동-드라마 관람, 가십 잡지 탐독 등등-도 잔소리 없이 즐길 수 있을 테고. (사실 그런 것들에 별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존이었지만,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탓에 더 즐기게 되었다)
"오늘은 제법 이른걸..."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탓에, 거실에서 웅얼거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존은 옮기고 있던 달걀을 거의 떨어트릴 뻔 했다.
"이런 젠장!... 아... 크흠흠! 셜록, 집에 있었어??"
거실 소파 위, 존이 아까 보았을 땐 뭉쳐있는 담요와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쿠션으로만 보였던 것이 꾸물꾸물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 바람에 떨어진 쿠션 아래에서 낮익은 검은 곱슬머리가 나타났다. 목소리가 이상했던 건 쿠션에 막혀있었던 탓이었나-존은 자신의 추리에 작게 고개를 끄덕하고 나서, 이번에는 왜 셜록이 뜨거운 물에 잔뜩 쫄아든 새우마냥 소파에 깊숙이 처박혀 있었던 건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나 때문에 깬건가? 미안한데-"
"그런거 아니니 미안할 거 없어. 내가 낮동안엔 자지 않는거 알고 있잖아, 존."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졸음에 짓눌려 태양을 증오하는 것마냥 소파에 파고들고 있었던 거야. 햇빛이 싫으면 방으로 들어가지."
"성급히 관찰과 결론을 연결짓지 마. 햇빛과 내가 이러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그런 것 치고는 쿠션이 있던 머리쪽에 정확히 햇빛이 내려쪼이고 있었더구만 뭐. 존은 작게 투덜거리며 다 꺼내놓은 물품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할로윈 덕분이군."
"응?"
"네가 일찍 퇴근하게 된 이유 말이야. 그 병원의 주요 환자층은 가벼운 일차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니 상식적으로 특히 이런 시기에는 감기 때문에 찾아오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대부분이겠지. 덕분에 요 근래 보조 의사에게까지 추가근무를 부탁할 정도로 환자가 많았지만 그 대부분은 코나 흘리며 주사는 싫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에, 간간히 극성스런 부모까지 섞여있어 그 응대에 넌 분명 엄청나게 삶이 지겨워지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환자가 없었지. 왜냐하면 오늘은 할로윈이니까. 덕분에 오랜만에 지겨운 쳇바퀴에서 벗어난 의사 선생님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고, 장을 많이 봐버렸군. 아, 다 좋은데, 야채칸에 있는 빨간 뚜껑 그릇은 옮기지 마. 거기 온도가 딱이거든."
이제 셜록의 쏟아지는 속사포에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가고 있던 존은 적당히 그 말을 걸러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빨간 뚜껑이 얌전히 닫힌 그릇 위에 샐러리 뭉치를 조심스레 놓았다. 딱히 다른 공간이 없으니, 그 그릇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는 절대 알려들지 말자고 다짐한 존은 뒤이어 테이블에서 양배추를 집어들었다. 그나저나 내가 장을 많이 봤다는건 어떻게 안 거지? 존은 여전히 소파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자세 그대로인 셜록의 등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정확한 추리였어, 셜록. 그런데 대체 할로윈과 환자가 준 거랑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
"뭐겠어, 사탕 때문이지. 아마 내일이면, 조금의 감기기운도 무시할 만큼 아드레날린에 충만했던 꼬마들이 밤새 밤바람을 쐰 탓에 환자들이 더 넘쳐나게 될 거야. 그러니 오늘을 즐기도록 해."
언듯 들으면 말도 안되는 상관관계였지만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존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셜록의 그 무서운 예언이 사실이 되든 말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오늘은 느긋하게 쉬어주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살인 사건이라도 하나 일어나 줬으면 좋겠는데..."
셜록이 조금 뒤, 멀쩡한 사람이 들었다면 분명 기겁할 그 대사를 완전히 풀죽은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존은 피식 웃었다.
"또 심심해서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평화로운게 때론 좋은 거라구. 느긋하게 책이라도 읽어 보지 그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음, 정 그러면 어제 들어왔던 의뢰라도 해보는건 어때- 조금이라도 기분전환이 되지 않..."
"흥! 잃어버린 고양이 찾기 따위는 사건이 아니야. 고양이를 찾아다닐 만큼 세상이 평화롭다니...그런 의뢰를 듣는 바람에 덕분에 한층 삶이 더 지겨워졌다는 것만 확인했지."
존은 누구든지 몇년쯤 셜록과 있다간 평화라든가 삶 같은 단어의 정의가 비뚤어지고 말 거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닫으며 힘주어 거실 쪽으로 외쳤다.
"찾을 자신이 없는 건 아니고?!"
작게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을 뿐,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존은 대답을 기대하는 대신, 비어버린 종이봉투들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놓고는 잠시 쉴 겸 식탁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릴없이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던 신문을 뒤적여 보았지만 방금 언급한 탓인지 어제 일이 마음에 걸려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양이?"
늦은 저녁 무렵에 무척 걱정스런 얼굴로 방문한 의뢰인이 꼬마인데다, 애타게 찾고있는 게 있다는 말에 여러가지 상상을 했던 존은, 그가 부스럭거리며 꺼낸 사진에 인쇄된 것이 검은 고양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좀 얼빠진 어투로 되물었다.
"네. 이름은 애비고, 여자애에요."
소년은 존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제 고양이는 아니지만...저도 선생님도 무척 귀여워했던 고양이였거든요. 선생님도 많이 걱정하고 있어서 꼭 찾고 싶어요. 크기는 한 이정도고, 보통......"
"아- 거기까지. 여긴 동물 보호소같은 곳 아니니 딴데 가서 알아봐. 그럼 이만."
꼬마가 본격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가차없이 끊은 셜록은 벌떡 일어나서는 투덜거리며 창가 의자에 얹어둔 바이올린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이제 자신은 방에있는 그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이, 곧장 바이올린 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꼬마의 얼빠진 표정에 존은 뭐라도 말해야 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미안, 저 아저씨는 원래 성격이 좀 이상하거든. 게다가 고양이 찾을만한 능력도 없고..."
그 말에 항의라도 하듯 들려온 시끄러운 튜닝 소리에 존이 기가막힌다는 표정으로 셜록쪽을 쏘아보자, 그게 먹힌 것인지 그는 잠시 활을 내렸다. 하지만 당연히 그건 존의 기대섞인 착각- 활줄을 몇번 더 감은 셜록은 곧장 또 엄청난 기세로 줄을 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거 이미 튜닝 다 되있는거 알고 있다고! 존은 당장이라도 셜록을 한대 때려주고 싶다는 유혹을 간신히 억누르며, 이제 완전히 풀이죽어버린 남자아이를 토닥였다.
"정말 동물 보호소 같은 데라도 가서 확인해보는게 어떻겠니? 길을 잃었다면 거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 내가 같이 가줄까? 확인하러 갈래?"
"존- 우리 다른 할 일 많은거 알고 있지?"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에 존은 다시 매섭게 셜록을 쏘아보았다. 셜록이 심심함으로 죽어갈 정도로 요 근래에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이 '할 일'따윈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뭐라고 한마디 하려 존이 입을 열었을 때, 아래서 한층 작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긴 이미 가봤어요... 괜찮아요. 다른 곳에 가볼게요."
힘없이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문으로 걸어가는 꼬마를 존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심정 속에서 지켜보았다. 셜록이 매몰차게 흥미없는 의뢰들을 거절할 때면 늘 느꼈던 미안함이고, 그건 어쩔 수 없이 곧 잊혀질 것이라는 것도 존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태도는 그렇다 쳐도 사건을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셜록이니 그 선별기준에 자신이 더 이상 토를 달수도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존은 필요 이상으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 보호소에 같이 가주겠다는 것도 예의상 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을 정도로.
사실 존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무척이나 아끼던 애완견이 어느날 사라졌었고, 그리 드문 일도 아니라고 금새 포기한 부모님과 달리 그는 꽤나 노력을 다해 찾아헤맸던 것이다. 물론 끝까지 찾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저 소년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일까-그렇게 생각하며 존은 문득, 이런 얘기를 하면 셜록이 분명 비웃을거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고는 한번 세차게 고개를 휘저었다.
"그 사진 놓고가지 않을래?"
그 말에 소년은 예의바르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방을 나섰지만, 힘없는 뒷모습은 아직도 존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존은 냉장고 구석에 자석으로 고정해놓은 고양이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쯤은 집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아직 어딘가를 헤메고 있을까?
"존-"
"으악!"
갑자기 바로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존은 펄쩍 뛸만큼 놀랐다.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가온 파자마 차림의 셜록이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놀란 김에 화낼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기에 힘없는 목소리로 소심한 항의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후아......셜록, 심심한 나머지 날 심장마비로 죽이려고 작정한거야? 그보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건데!"
"물 올려달라고 몇번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어제 그 꼬마 생각하느라 내 말도 못들었겠지."
전기 포트에 물을 채워넣고 스위치를 올린 뒤 존의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던 셜록은, 문득 그동안 그들의 식탁에는 없던 물건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뭐지, 존?"
위험한 물건이라도 본 것처럼 몸을 조금 뒤로 빼며 눈살을 찌푸리는 셜록을 보며, 존은 대체 왜 사탕이 '식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위험물품 1순위'가 되버린 것인지 따위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탕이잖아, 셜록."
"너 단거 싫어하잖아."
"...일부러 그렇게 모르는 척 하지 마! 보면 알잖아, 할로윈 용 사탕인거!"
존은 포장도 채 뜯지 않은 사탕 봉지들이 아무렇게나 들어있는, 짖궂게 웃고 있는 호박 모양의 사탕바구니를 가리키며 탓하듯 소리를 높였다.
"ㅎ...허드슨 부인이 모르는 사람을 통과시킬 일은..."
"하하! 허드슨 부인이 먼저 제안한 일이거든! 밖에 나갈 일 없는 백수님은 모르시겠지만 이미 정문에도 호박을 놔둔 상태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모험심에 차 플랫 복도를 어슬렁거리면 협조해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사온 것 뿐이야."
"그런 말도 안되는..."
신음하듯 내뱉는 셜록의 말에 대답하듯 마침 다 끓은 전기 포트가 탁, 소리를 내며 꺼졌다. 존은 완전히 입을 다물어버린 셜록을 내버려두고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조금 뒤 셜록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간신히 읽던 한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가야겠어."
"뭐?"
쏜살같이 자기 방으로 뛰어가 문을 쾅 닫은 셜록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는 코트를 황급히 걸치며 부엌으로 돌아와 존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나가자."
"뭐?? 셜록...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나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구. 산책가고싶은 거라면 혼자..."
미적거리는 존의 반응에 못마땅한 듯 끙 소리를 낸 셜록은, 이번엔 냉장고로 다가가 매달려있던 종이를 확 낚아채서는 존의 눈앞에 내밀었다.
"산책이 아니라 사건! 그렇게나 하고싶어하던 일인데 설마 나혼자 보내진 않겠지?"
"허....."
셜록은 갑작스런 변화에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존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리드미컬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옆에 걸쳐놓았던 재킷을 존에게 강제로 입히고는 방문쪽으로 떠밀었다. 그 모든 일은 하도 순식간에 일어나서, 존은 마땅히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방 바깥에 서게 되었다. 황망하게 뒤를 돌아보자, 셜록은 문을 쾅 닫고 잽싸게 잠근다음, 어느새 들고 나온 사탕바구니를 내팽겨치듯 문 앞에 놓고는 존을 재촉했다.
***
거리는 가는 곳마다 할로윈 분위기로 한창이었다. 본격적으로 인테리어를 바꾼 레스토랑이며 문까지 활짝 열어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작은 호박등이나 장식 하나만을 달아놓은 곳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절을 기념할 마음가짐이라는 것 만은 확실해 보였다. 심심찮게 보이는 괴상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즐겁게 인사하며 지나갈 때마다 셜록은 진저리를 쳤고, 그 때문인지 셜록은 자꾸만 외곽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어느 한적한 공원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셜록의 발걸음은 조금 느려졌다.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저녁 때쯤엔 눈에 띄게 사람이 없었다. 조깅을 즐기는 착실한 사람들과, 저녁의 추위도 무섭지 않다는 듯이 딱 달라붙은 커플들 정도가 이따금씩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존은 언제나 그랬듯이 항복했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기로 했다. 선선한 가을냄새와 발밑에 흩어진 낙엽이 바삭거리는 소리가 정겨웠다.
"셜록, 우리 늦어도 저녁 전에는 돌아가야 돼."
한동안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잠자코 셜록의 뒤를 따라가던 존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왜긴. 저녁먹고나서 슬슬 아이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할 테니까..."
셜록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자신들이 아까부터 내내, 말 그대로 하릴없이 산책만 하고 있는 모양새인걸 다시 한번 상기하며 존은 이번엔 달래듯이 말을 걸었다.
"겁먹을거 하나도 없어, 셜록. 플랫까지 올라올 녀석들은 정말 적을거고, 우린 그냥 각자 저녁시간을 즐기다가 아이들이 오면 그냥 사탕 한웅큼 줘서 보내면 되는거야. 문 여는거랑 상대는 내가 할테니, 걱정하지말고 이제 슬슬 돌아가자, 응?"
"또 성급하게 오해하지 마, 존. 난 도망쳐 나온게 아니라 미아가 된 불쌍한 동물을 찾으러 나온거야."
아, 그러셔? 존은 셜록의 뒷모습에 대고 입을 삐죽해 보였다. 탐색은 무슨, 그냥 시간 떼우려 산책하는 거구만 뭐.
"그거에 관심 없다는거 진작부터 알았으니까, 그걸 변명거리로 삼은 건 용서해 줄게. 그러니까..."
"날 못 믿는거야?"
"아니, 이건 못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셜록이 갑자기 멈춰서 돌아보는 바람에 존은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자신을 응시하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투명한 푸른색 눈이 마치 자신의 태도를 책망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존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고, 잠시 지켜보던 셜록은 조금 뒤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존은 그렇게 생각하며, 혹시라도 정말 셜록이 무언가 실마리를 잡아 그곳으로 인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갑게 굴고 어이없이 행동하긴 했지만, 사실은 조금쯤 진지하게 생각해준게 아닐까? 셜록이라면 의외로 고양이 찾기도 쉽게 해낼수 있을 지도......
"저녁 먹으러 갈까?"
다시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는 셜록 덕분에, 조금 벅차오르던 존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기막히다는 그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셜록을 보며 존은 배신감에 뭐라도 쏘아대주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번에는 강제로 말을 채 꺼내지 못한 채 좌절당하고 말았다. 매번 그렇듯이 예고도 없이 개인 영역을 불쑥 넘어 가까이까지 다가온 셜록은 손을 올려 존의 입을 틀어막았다. 존은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하며 셜록의 손을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셜록은 단호했다.
"쉿, 쉿, 저쪽-"
그 말과 함께 셜록이 존을 돌아세우자, 존도 그의 뒤에 있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밤이라면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이 새카만 고양이가 노을빛을 받으며 마악 잔디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 까만 털과 인상적인 파란색 눈. 사진의 그 고양이였다. 존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숨 마저 참고 있을 때, 그 녀석은 멀뚱히 서 있는 둘을 무감동한 눈빛으로 흘깃 바라보더니,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우거진 수풀 안으로 사라졌다.
"셔...셜록..."
존이 감탄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셜록은 말없이 손짓했고, 둘은 조심스레 길을 벗어나 수풀 안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
길도 없고, 특히 손질될 일은 없을 공원 구석의 숲이었지만 다행히도 어떻게든 걸어갈수 있을 만큼은 쾌적했다. 이따금씩 잔뜩 쌓인 낙엽에 발이 빠지거나, 발걸음에 부러지는 잔가지 소리가 조금 존을 움찔하게 했지만 막상 저 멀리서 걸어가는 고양이는 소리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눈채를 못 챘나 하고 조금 발걸음을 빨리 해 보면 그녀석은 어떻게 알고는 조금 뛰다시피 달음박질쳐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어디 멈추기라도 해야 잡는 시도라도 해 볼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존은 셜록을 흘깃 바라봤지만, 그도 뾰족한 수는 없는지 그저 묵묵히 뒤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 어느새 나무들이 사라진 작은 빈터에 발을 들여놓았다는걸 깨달은 존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언듯 보면 그저 여느 숲에도 있을 법한 광경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직 조금 파랗게 고개를 들고 있는 풀들이 카펫처럼 깔린 그 공간의 저편에는 단숨에 눈을 사로잡을 만큼 커다란 참나무가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늘어진 잔가지들은 마치 수백마리 참새가 쉬고갈 수 있을 것만 같이, 풍성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진해지기 시작한 석양을 등에 업은 참나무는, 군데군데 금빛으로 변한 잎사귀에 붉은 빛을 덧대며 살짝 불어온 바람에 몸을 흔들었다. 마치 파도치는 것 같은 소리가 한차례 지나간 후에야 존은 퍼득 정신을 차렸다. 검은 고양이는 공터 중간 즈음까지 걸어가서는 이제 좀 쉬겠다는 듯이 몸을 낮추더니, 풀밭이 기분좋은 담요라도 되는 것처럼 누워 시간을 들여 한껏 기지개를 키고는 상체만 살짝 세운 채 그들을 돌아보았다.
"뻔뻔한 녀석이군. 이래서 고양이는 싫다니까..."
셜록은 그렇게 말하며 작게 혀를 차고는, 결심한 듯 코트를 벗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고양이와 기싸움이라도 하는 양 똑바로 응시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존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는, 셜록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근처까지 다가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은 셜록이 코트를 펼쳐들자마자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둘이 그대로 멈춰선걸 확인하고 나서야 종종걸음을 멈추고는, 서두를 거 없다는 듯이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잡을 수 있을까?"
"흠... 저쪽 우물 벽쪽에 몰아넣을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존, 아까처럼 거리 좀 두고 그대로 뒤로 돌듯이 해서 천천히 걸어가."
셜록의 그 언급에 그제서야 시선을 조금 뒤로 옮기자, 참나무에 이웃하듯 있는 작은 돌더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우물이라고? 다시 자세히 관찰하자 과연 동그란 형태로 제법 성의있게 돌이 쌓여있는걸 알 수 있었지만, 버려진지는 꽤나 오래된 듯 무척이나 낡아서, 물은 이미 다 말라버렸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어쨌든 둘은 다시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고, 고양이는 그때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몸을 뒤로 물렸다.
우물까지 다다르자, 고양이는 돌을 등진 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셜록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얌전히 잡혀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더이상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는 걸 보며 셜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존은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셜록이 결심한 듯 코트를 집어던졌을 때-
혀를 내두를 정도의 타이밍으로 그것을 벗어난 녀석은 우물 위쪽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난간에 선 채 아슬하게, 확인하듯 몇 발자국 주춤거리던 고양이는 우물 안쪽을 흘긋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푸른색 눈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존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 해치려는 거 아냐, 가만히, 그대로 가만히...존은 녀석이 그걸 이해하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고양이는 그대로 멈춘 채 존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한 뼘 정도 남은 거리에 다다랐을 때, 존은 처음으로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냐옹.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일지 가늠하기도 전에 녀석은 갑자기 주춤 뒤로 몸을 뺐고, 결국 발을 헛디딘 고양이가 우물 안으로 미끄러졌을 때, 존은 앞뒤 생각도 할 수 없이 우물 안쪽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존!!"
곧장 달려온 셜록이 끌어내려는 듯이 재킷을 그러쥘 때까지도 존은 우물 벽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를 잡으려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우물의 깊이며, 자신이 얼마나 몸을 내밀었는지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리고 겨우 부드러운 털이 양 손바닥에 느껴졌을 때, 존은 자신의 몸을 지지하던 돌이 무너져 내리는걸 느꼈다. 그대로 둘은, 아니, 셋은 우물 안쪽으로 빨려들어갔다. 누군가가 멀리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우물 벽에 부딫혀 메아리치듯 들려왔지만, 이미 느껴지는 것은 새카만 어둠과 추락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