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니는 화가지망생, 브래들리는 삼촌 그림도구용품점에서 알바. 근처 대학에서 경영학...음, 사실 첨에는 같은 미술관련 부로 브래들리는 조각과라고 할려그랬는데 아는게 전무하니 ㅠㅠ 여튼. 경영학 하자... 경영학도!
어쨌든 그렇게 쉅끝나고 오후시간에 파트타임을 뛰게 됐는디... 삼촌한테 쿠사리 먹어가면서 도구 이름들이며 그런걸 외우고 있던 나날. 저녁시간이 되어 닫을시간즈음 되서 삼촌을 기다리고 있는디 콜리니가 뛰어들어오는거. 뛰어들어오긴 했는데 기세좋게는 아니고 완전 폐인몰골로 ㅋㅋ 그러고는 녹색 유화물감을 달라는거지. 브래들리가 어버벙하게 못 찾고 있으니까 못참은 콜리니가 가서 집어서는 막 동전까지 섞어서 돈을 놓고는 뛰쳐나가. 브래들리는 첨엔 뭐지 저녀석;;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몇번 비슷한 일이 생기자 브래들리도 콜리니를 기억하게 됨. 다음엔 "어 또 그사람이네" 중얼거리고는 스스로 집어서는 계산대로... 그런데 그 위에 과자칩이 하나 있다?? 여기 이런게 있나?? 하고 있는데 콜리니는 씨익 웃고는 그거까지 다 해서 대금을 놓고는 훅 나가.
삼촌한테 물으니 콜린은 오래전부터 알던사이고 자주 와서 그렇게 사가고는 해서 과자는 그 전용으로 숨겨놓는다는거 ㅋ 그러면서 삼촌이 좀 특이하지만 괜찮은 녀석이라고... 그러면서, 재능이 있는데 아직 전혀 알려지질 않았다는둥...
뭐 그 뒤로는...콜리니랑 친해지고 누추한 집/작업실에도 들러서 감탄하고 뭐 여차저차... 그러다 패트론이 나타나서 콜리니 그림도 좀 팔리고 전시회도 하고... 근데 이 부자 패트론이 콜리니 자체에도 관심이 있는거 같고.... 브래들리는 질투에 불타오르고 뭐 그런 뻔한 얘기ㅋ
음악쪽도 같은 맥락에서 해보고싶당. 무난한 이야기니깡 ㅋ 콜린이 천재 독주자고 브래들리가 단원? 근데 브래들리 왠지 프로 음악가로는 전혀 안어울려 ㅋㅋ;; 아니면 그냥 음대생이랑 운동전공 대딩 이런거도 괜찮겠다.
-----------
싸늘하게 식어든 것을 알면서도 버릇처럼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인 브래들리는 곧장 후회했다. 안그래도 뜨거운 채라도 맛이 없는 편의점 커피는 식고 나면 그저 쓴 물에 불과한 것인데- 브래들리는 작게 투덜거리며 이번에는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것 처럼 종이컵을 들어 쓰레기통 위로 옮겼지만, 잠시 고민한 후 다시 원래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아직 가게가 닫을 시간까지는 멀었고, 그때까지 이 썰렁한 가게를 함께 지켜줄 건 이녀석 밖에 없다. 맛이 있던 없던 카페인은 카페인이니까, 뭐. 브래들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카운터 옆에 올려져있던 미술 관련 잡지를 뒤적거리다 포기하고는 멍하니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며칠 안 되는 경험이었지만, 이 망할 가게는 지루할만큼 손님이 없었다. 어찌어찌 운좋게도 삼촌이 운영하는 미술도구상점이 브래들리가 다니는 대학 근처에 있었고, 인터뷰며 골치아픈 알바 탐색 없이 얻게 된 손쉬운 파트타임이니 감사하기 그지없을 상황이긴 했지만, 이런 지루한 나날이 이어지자 브래들리는 언제나처럼 인생한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익이 남긴 남는거야? 엉덩이를 걷어차여 가며 외운 도구 이름들이며 가격들이 과연 쓸모있어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지만,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손님들을 서투르게 응대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브래들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한 사람의 경영학도로서! 그 어떤 것도 경영인의 시야를 넓히는 경험이라 했던 교수님의 잡담을 되새기며......!
그런거따위, 알게 뭐야. 금새 흥이 식은 브래들리는 다시 바깥 탐색에 열중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인적은 드물었다.
나란히 모여있는 동료 상점들도 이미 하나둘씩 가게를 닫은 뒤였으니 그 고즈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9시까지는 이제 약 삼십분이 남았다. 9시 오분 전 즈음이 되면 삼촌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선 가게를 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약 십분 뒤면 집으로 갈 수 있겠지.
그때 마치 환청처럼 들린 딸랑-하는 입구의 종 소리에 상념에서 끌려나온 브래들리는, 왠 비쩍마른 남자 하나가 급하게 뛰어들어오는 걸 확인하고는 순간 숨을 흡 들이쉬었다. 뛰어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어딘가 힘없이 비척거리는, 그렇지만 확실히 다급한 발걸음으로 곧장 카운터까지 와 선 그는, 브래들리와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어딘가 단호한 투로 말했다.
"xx사 녹색 유화물감 00호 주세요."
갑작스런 그 요구에 아서는 완전히 벙쪄있었고, 그 남자는 그제야 슬쩍 눈을 올려떠 물끄러미 브래들리를 바라보았다. 조금 긴듯한, 정리안된 채 여기저기 내려앉은 새카만 검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청록색 눈동자는, 길고 숱많은 속눈썹의 그늘 때문인지 깊다는 인상을 주었다. 남자치고는 제법 예쁜 눈인걸- 그렇게 생각하던 브래들리는, 그 눈이 미심쩍다는 듯이 슬쩍 가늘어지자 퍼득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어...며... 몇호라 그러셨죠?"
"00"
이런식으로 직접 찾아달라 요구한 손님은 없었기에, 브래들리는 카운터를 돌아나와 진땀을 흘리며 유화물감을 진열해 놓은 진열대에 섰다. 그리고 어떤 순서대로, 어떤 규칙으로 진열되어 있다고 누누히 설명했던 삼촌의 노력이 무색하게, 브래들리는 하얗게 된 머리를 쥐어싸며 일일히 훑기 시작했다. 여전히 카운터에 기대있던 남자는, 조금 뒤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다급하다싶은 발걸음으로 다가와서는, 금새 예의 그 물감을 집어들고는 성큼 걸어가버렸다.
"어, 저기~"
그리고 브래들리의 걱정이 무색할만큼, 남자는 주머니를 뒤져 꼬깃한 지폐들을 꺼내더니 잽싸게 카운터에 올려놓고는 곧장 가게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카운터로 가 확인하자, 거기엔 동전까지 포함해 완벽하게 정확한 금액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도 세금까지 포함된 가격으로.
정말이지 여우에게라도 홀린 기분이었지만, 브래들리는 그 몇분만에 일어났던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특이한 미술전공 학생들 사이에서도 특히 이상한 손님이었던건 분명하지만, 뭐, 자주 볼 일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추측이 무색하게, 그 남자는 이따금씩, 아니 제법 규칙적인 기간을 두고 자주 들렀다. 덕분에 그 남자가 꽤나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운 얼굴을-적어도 대학생일게 분명했지만, 다른 곳에서 봤다면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었을 그런 얼굴- 하고 있다는것과, 빛바랜 녹색 스웨터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할 만큼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해도 그 망할 유화물감의 번호만은-그가 원하던 건 겨우 두가지 색일 뿐이었지만- 친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번 얼빠진 모습을 보여준 탓인지, 이제는 그도 새 알바생의 존재를 기억하게 된 듯 했다.
-------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어, 또 그 사람이네" 하고 중얼거린 그는, 여느때와 같은 조금 힘없는 발걸음으로 진열대의 숲 사이로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조금 느지막히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젠 놀랄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내용물들 사이에 왠 수상쩍은 물건이 놓여있었다.
"......이건 어디서???"
조그마한 과자봉지 두개. L사의 제일 작은 용량의 오리지날 감자칩. 보통 99센트로 통용되는 상품. 근처 구멍가게를 비롯해 여느 학교의 자판기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흔한 물품이었지만, 여기 있을리는 만무할 녀석이었다.
다시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 된 브래들리를 보고 씨익 웃은 그는, 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지폐와 동전들을 아무렇게나 꺼내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거 하나당 1달러. 두개니까 두장. 하나는 당신 먹어요."
아직 벙쪄서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며 서 있는 브래들리에게 찡긋 윙크해보인 그는 주섬주섬 계산대 위에 흩어진 물건들을 품에 안더니 짧막한 인사와 함께 곧장 사라져버렸다. 이런 젠장. 재치있는 대답은 커녕 인사도 못 한게 바보같게 느껴진 브래들리는 겨우 문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생각을 잘라내듯 마른세수를 했다. 느릿하게 동전을 세어보고 지폐를 갈무리해 레지스터에 넣고 나자, 카운터에 남은 것은 그가 남기고 간 조그만 과자 한 봉지 뿐이었다.
다시 고즈넉한 조용함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시계를 보고 한숨을 쉰 브래들리는, 잠시 고민한 뒤 과자봉지를 집어들어 입구를 뜯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칩이 입 안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문득 부스스했던 그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였던 윙크가 다시 떠올라, 브래들리는 이번엔 한꺼번에 칩 몇개인가를 입안에 물었다. 내일도 오려나? 그랬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