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lin-아서/멀린] The Elixir of Love (4)
모르가나의 말은 달콤했지만 정말 내 진심이 보답을 받을거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나의 진심, 그를 지키기 위해 쏟았던 노력, 충성과 애정은 이 세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존재를 과연 세상은, 그리고 아서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이런. 감상적이 되어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는 다시 아서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마자 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내가 네 의견도 묻지 않고 연인이라고 말해서 화 났어?"
너의 그런 표정 앞에서 어떻게 내가 화를 낼 수 있겠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고 그 모습을 본 아서는 안심한 듯 표정을 풀더니 나를 살짝 끌어안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 바깥은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다. 오늘도 아서가 근사한 저녁을 준비해 놓았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그의 몫도 함께였다. 한 테이블에서 함께 하는 식사는, 평소라면 시종과 주인 사이에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함께하는 저녁식사라고 생각하자 나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 먹고난 접시를 대강 치워두고, 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평범한 초보 연인들이 나눌법 한, 가볍고 별것 아닌 이야기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동안 아서는 언제나보다 더 밝고 많이 웃어서 나는 그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동안 계속되던 이야기가 잦아들자, 자연스러운 순서라는 듯이 아서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갑자기 좁혀진 거리에 압도된 나는 당황하며 다른 말을 꺼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손이 닿자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제 저녁처럼 내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는 아서의 손.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에 정말 사랑에 빠진 듯한 뜨거운 눈길. 그 체온에 내 심장은 정해진 듯이 또 빨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눈에 내 얼굴이 비친다.
안돼, 또 말려들고 있어. 일단 어떻게든 여기서 도망가야 했다.
나는 얼굴이 벌개진 채로 벌떡 일어나서 뛰어나가려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서가 더 빨랐다. 나와 거의 동시에 일어난 그가 내 팔을 잡아버린 탓에 난 다시 멈춰설수밖에 없었다. 그는 잡은 팔에 힘을 주어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려 했고 그 힘에 난 거의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러자 그는 아예 내 뒤에 있던 테이블쪽으로 날 밀어 가두다시피 만들었다. 허리께에 테이블의 모서리가 와닿는게 느껴진다.
이젠 도망갈 수, 아니, 움직일수조차 없었다.
"이번엔 도망가게 놔두지 않겠어."
점점 가까이 밀어붙여오는 아서 탓에 난 거의 테이블에 쓰러질것만 같았다. 간신히 손을 뒤로 해 테이블 위에 짚어 지탱하는 와중에도 내 팔을 잡은 그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서의 숨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온다.
"사랑해, 멀린." 낮아진 목소리로 반복하는 말. "너에게..." 그는 조금 격앙된 호흡으로 이어 말했다. "키스하고 싶어."
상기된 그의 표정과 말투에 나도 전염될것만 같았다. 달콤한 숨소리-
이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에게 나는 가까스로 말했다.
"이...입술은 안돼."
"왜? 키스하게 해줘."
'진정한 사랑의 힘'을 상징하는 것은 입술에 하는 키스. 나는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그 의식을 이젠 왠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기억해낸 뒤로 그의 입술은 나에게는 결국 허락되지 않을 자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의 운명의 반쪽이라지만, 나로는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설명할 수 없으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는 힘으로 밀어붙여오는 대신, 불만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알았다는 듯 나의 한쪽 뺨에 답하듯이 입을 맞추고는 이어 턱이며 이마를 따라 키스를 이어갔다.
내 손 위로 얽혀 눌러오는 그의 손과 밀착된 다리로 느껴지는 무게감이 나를 아찔하게 했다. 이제 그의 얼굴은 내 목덜미로 내려와 키스를 퍼부었고 나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다. 등에 와닿는 테이블의 딱딱한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내 위로 눌러왔다.
그의 입술이 닿은 부분들이 뜨겁게, 마치 그곳에 심장이라고 있는 듯이 맥박친다.
"안돼...그만, 아서..."
간신히 나온 목소리로 말해 보았지만 그는 들은척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의 손이 내 셔츠 안으로 들어와 이곳 저곳을 쓸어만졌다. 이제 쇄골 주변을 핥아올리는 오싹한 감촉에 나는 신음을 삼켰다.
"허락해 줘. 멀린."
농담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지한 얼굴. 어렴풋이 욕망으로 어둡게 빛나는 눈동자.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들에 난 머릿속이 엉켜들었다.
난 우리의 불규칙한 호흡소리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었지, 반한 쪽이 지는 거라고.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사라졌고 난 완전히 패배한 기분이었다.
난 아서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짜피 없어져 버릴 한여름 밤의 꿈. 내일 마법의 효과에서 깨어나면 그는 그저 이 모든 것을 꿈처럼 잊어버릴 것이었다. 그럴 거라면 내가 그 꿈의 한 조각을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 어짜피 이뤄질 수 없는, 평생 보답받을 일 없을 마음. 이걸 내 보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걸까?
결국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서를 끌어안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적극적인 모습에 그는 잠시 놀란 듯 몸을 굳혔지만, 이내 웃으며 화답하듯 나를 끌어안아 왔다.
"아아, 넌 왜이리도 귀여운지..."
반쯤 나를 안아들다시피 한 아서는 침대로 걸어갔다. 매일 훈련으로 단련되어서인지 전혀 망설이는 기색도 없다. 지나가며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촛불을 불어 끈 아서는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건 여전히 아서다운데?
-
보름달이 떴는지 촛불을 끄고도 주위는 어렴풋한 하얀 빛으로 빛난다.
매번 손수 시트를 갈고 정리했던 푹신하고 커다란 이 침대에 누울 날이 오다니. 아서에게 안겨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부드러운 침대 시트를 쓸어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만져오는 아서의 손길이 부드럽고 다정할수록 나는 행복한 동시에 슬퍼졌다.
오늘 밤이 지나면 넌 다시 날 이렇게 만져주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 시종이 되어 그늘에서 지내는 생활로 돌아가는 거야. 그늘이면 좀 어때? 적어도 언제까지고 네 옆에 있을 수는 있을 테니까.
네가 왕이 되어 너의 왕비를 맞이하고, 너의 아이들을 낳고,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숨을 거둘 때까지 나는 너를 지킬 거야.
조금은 서두르는 듯한 손길로 내 옷을 벗겨낸 그는 몸을 일으켜 주저함 없이 자신의 옷도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조급했던 그 손길과는 반대로 차분히 몸을 겹쳐왔다. 피부가 맞닿는 생경한 느낌에 나는 놀라 몸을 떨었다. 그걸 느낀 듯 아서는 잠시 그대로 가만히 있더니 이윽고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몸을 탐색하듯 쓰다듬는 아서의 모습을 혼란 속에서도 하나하나 내 기억속에 새겼다. 강하고 단단하게 끌어안는 그의 팔, 남자다운 굴곡을 그리며 움직이는 근육들, 표정들 하나하나까지.
목덜미부터 쇄골 아래까지 물어뜯듯이 키스해오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괜찮아?"
이 바보 녀석. 왜 답지 않게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거야? 왠지 가슴이 아파 나는 이를 사려물었다.
"괜찮아. 난 이정도로 아파할 만큼 연약하지 않다고."
"뭐야, 그럼 더 격렬하게 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그 천연덕스러운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아서의 코를 꼬집었다. 아야! 아서는 너무하다는 듯이 흘겨보고는 다시 짖궂은 표정으로 애무를 재개한다.
넌 지금 누구를 보고 있는 걸까?
아서, 너는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날 죽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내 이 마음도 알려진다면 더 이상 네 곁에는 있을 수 없을 거야. 더 이상 세상에 비밀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숨겨야만 할 마음은 어느새 생겨나 버리고 말았다.
네가 보고 있던 내 모습이 사실은 반쪽짜리라는 걸 알면, 친구라고 생각해줬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고 알게 되는 날이 오면 넌 날 미워하게 될까?
하지만 그것만은 알아 줘. 너의 앞에서만은 난 언제나 진짜였어. 너에게만은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비록 지금은 네가 나를 보고 있지 않는다 해도-
나를 황홀하게 쳐다보는 아서의 왠지 낮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그를 꽉 껴안았다. 그 낮선 표정이 사라지자, 이제까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껴본적이 없었던 숨소리와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따스하게 나를 감쌌다.
멀린은 이렇게 소녀심 뚝뚝 떨어지는 애는 아닌데... -_-...캐붕이 여기저기...망했당...
에로틱(?)한 씬을 쓰고 싶었지만 난 절대 무리일거라는걸 깨달았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능력부족...OTL
별 내용 안썼는데도 쓰면서 손이 배배 꼬임... 언젠가 태연하게 내 욕망이 잔뜩 섞인ㅋ 글을 써내려갈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