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lin-아서/멀린] The Elixir of Love (3)
흠...내안의 모르가나가 흑화되기 전에는 정말이지 늠름하고 의지되는 누님스톼일의...지혜로운 여인네였는데...흑...
이걸 끼적일땐 몰랐지...후후...
나는 넋을 놓고 내 앞에 놓여지는 근사한 요리와 와인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난 완전히 실패했다. 내가 나를 당나귀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잖아.
뒤늦게 상황의 심각함을 안 나는 일단 어떻게든 방에서 빠져나와 내 스스로를 격리시키려 했으나, 고백한 후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서의 페이스에 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의 고백에 싫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늘 꿈꿔왔던 상황이었다.
어떤 대답도 못하고 우물거리는 나에게 그 뒤에도 아서는 열렬한 고백을 쏟아냈고, 결국 그 기세에 지친 나는 거부의 말도 해보았으나, 완전히 약의 효과에 맛이 가버린 아서에게는 그 정도는 먹히지도 않았다.
내 의사가 어떻든 나를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아서는, 나를 계속 자기 방에 잡아두고는, 설득하고 구슬리는 등, 할수 있는 한의 온갖 느끼한 멘트로 나를 공황상태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이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제 내 앞에는 생일날에도 볼까말까한 근사한 저녁식사가 펼쳐져 있다. 바로 옆에 앉아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서가 어서 먹으라는 듯 손짓을 한다.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미칠듯이 어색한 기분에 뻣뻣한 미소를 지으며 일단 앞에 놓인 스프를 한숟가락 입으로 가져갔다.
"맛은 어때? 먹을 만 해?"
평소때의 식사에 비한다면 이건 '먹을 만 하다'의 문제가 아니지. 왕실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만들어졌을게 뻔한 고급 요리들. 고기와 감자가 넉넉히 들어간 따듯한 수프의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따스한 식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의 긴장이 풀려가는 걸 느끼며 솔직히 감탄했다.
"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 이렇게 풍부한 맛의 수프는 처음 먹어봐."
"처음이라고 멀린? 아아 이런... 앞으로는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줄게."
앞으로는-이라고 쉽게 말하지마 이 바보 왕자야.
아서는 '나는 네가 먹는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며 닭요리를 손수 잘라 내 입에 넣어주려 하는 둥 온갖 정성을 다 들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련의 소동들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젠 뭐 어떻냐는 심정이 되어갔다.
어짜피 이틀 후면 다 원래대로 돌아갈 환상이다. 그럴 거라면 조금은 이 순간을 즐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조금 행복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취급과는 정반대로, 아서에게 소중하게 다뤄지는 기분은 최고였으니까.
아서는 깨끗이 비워진 그릇들을 대강 옆으로 치우고, 각자의 잔에 와인을 다시 채우고는 앉아있던 의자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정말이지, '사랑에 빠진' 눈으로, 나를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는 듯이 황홀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얼빠진 아서가 얼마나 평소와 다른지 기억해내고는 간신히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 눈을 마주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말이 없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아서는 살짝 손을 올려 내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만지작거렸다. 그 손이 내려와 귀를 스치고, 결국 내 뺨을 감싸자 나는 점점 내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마실 기회가 없던 와인을 마신 탓인지 얼굴도 조금 씩 달아올랐지만, 행복감 때문에, 그가 눈치챌 뜨거운 체온을 부끄러워할 새도 없었다.
아서도 약간 술기운이 도는지, 혈색좋은 그의 입술은 한층 더 붉어져 있었다.
그는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혀를 살짝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맙소사, 지금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런 아서의 눈을 홀린 듯 바라보던 나는 그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눈과 입술을 번갈아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만약 저 입술과 키스라도 한다면...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번득 정신을 차린 나는 그의 입술이 닿기 바로 직전에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아무리 꿈꾸던 상황이 이뤄졌다고는 해도, 이것까지는 아니었다. 얼마 안있어 사라져버릴, 가짜 감정에 진심으로 매달렸다가는 이 꿈에서 깨어날 때 얼마나 괴로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걸 감당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우정이 우정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애초에 모험을 하질 말아야지.
나는 급하게 아서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곤 부리나케 방에서 뛰쳐나왔다.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아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
그날 밤은 어쩔 수 없이 잠을 설쳤다. 술기운은 밤이 깊어가며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자꾸만 아서의 얼굴이며 눈빛이 떠올라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나는 수면부족으로 멍한 머리를 흔들며 어느새 밝아진 창문을 야속하게 쳐다보았다. 어떤 얼굴로 다시 아서를 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그는 지금 마법 효과의 영향아래 있지만, 나는 아니다. 완전히 멀쩡한데도, 그놈의 사랑의 묘약인지 뭔지를 원샷한 것마냥 굴지 않았는가!
그 부끄러운 기억에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보며 가이우스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도무지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제길- 그 광대! 이걸로 나를 엿먹일 작정이었다면, 그는 그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큰 수확을 거두고 있는 셈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흘러갈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오늘 하루만 견디면 아서의 마법을 풀 수 있을 터였지만, 그 전까지 자신이 견딜 수 있을 지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아서의 방문앞에 선 나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뗐다 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문틈 사이로 방을 살피자, 아서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서를 목표로 조심스레 해제 주문을 외웠다.
"Abuge aglaeccraeft!"
마법이 발동되는 건 느껴졌지만, 그게 아서에게 가 닿았는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번 더 주문을 외우고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제발... 이번엔 이게 먹히길 바래야지. 상대가 비비안같이 미인도 아닌 나니까, 의외로 이걸로 풀릴지도 몰라. 에라, 안되면 안되는대로 오늘 하루 최선을 다 해 도망다니지 뭐.
나는 몇번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힘차게 문을 열었다
"아서, 아서! 아침이야! 일어나!"
커튼을 걷고는 어제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부른다. 이번에는 한동안 불러도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뒤척이기만 할 뿐, 벌떡 일어나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타령은 하지 않았다. 좋은 징조였다. '평소'의 아서처럼 아침잠이 많은 모습. 나는 내 해제 마법이 드디어 먹힌건가 하는 희망에 부풀어 오르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바보같은 생각을 애써 무시하며 침대 곁에 섰다. 이런 장난은 짧은게 좋아. 이제 원래대로 평화로운 나날로 돌아가겠구나.
"전하! 이미 아침이라니까요~ 일어나서 아침 먹....우왁!!"
그러나 그렇게 안도한 것도 잠시, 언제부터 깨어 있었던 건지 아서는 마치 내가 보인다는 듯이 정확히 내 팔을 낚아채서는 힘껏 침대 쪽으로 당겼다.
균형을 잃은 내 몸이 무게 그대로 침대위로 풀썩 쓰러지는 바람에 먼지가 이리저리 날리며 햇살에 반짝거리며 흩어지는게 시야에 들어온다. 예쁘다- 나는 잠시 현실감각을 잊고 그따위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내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아서의 팔힘에 저항도 못 하고 끌려가 그대로 안겼다. 온 몸에 느껴지는 단단한 팔 근육과 가슴의 감촉에 이어, 시야에 잔뜩 들어오는, 오늘도 예외없이 반 누드인 아서의 맨 살에 당황하여 위로 시선을 들었다. 여전히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마치 아끼는 곰인형이라도 안아든 꼬맹이처럼 만족스런 웃음이 걸려 있다.
이 상황이 완전히 내 실패를 증명하는건 아니다. 그냥 잠꼬대, 잠결에 이러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일단 거기서 빠져나오려 꿈틀거렸다. 그 때 바로 옆에서 잠에서 덜 깬 듯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안녕, 내 사랑. 좋은 아침이야."
으웨엑- 실패구나. 또렷하게 들려온 아서의 목소리에 나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저항을 멈추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어제는 왜 그렇게 도망갔어? 내가 뭔가 널 언짢게 했나?"
그 말에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아직 졸리다는 듯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뇨, 전하. 그럴리가요. 단지 갑자기 배가 좀 아프길래...하하..."
"뭐야, 그런 거였어? 말을 하지... 그리고 그 호칭은 관둬. 이제 연인 사이가 될 건데,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되잖아."
나는 기가 찬 마음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뻐끔거리다가 그냥 다물었다. 아서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 웃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나를 꼭 끌어안은 채로. 그렇게 몇분이고 흘러간 시간이 나에겐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
"전하, 왜... 절 따라오시죠?"
"전하가 아니라, 아서! 오늘은 훈련 쉬는 날이니, 가급적이면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지."
"끙...그래, 아서...내가 금방 다녀올테니 방에서 쉬라고 했잖아!!"
"또 도망칠 거 같아서 그러지. 게다가, 넌 귀여우니까 어디서 누가 널 낚아채 갈지 모른단 말이야."
"맙소사, 아서! 그런... 그럴 리는 절대 없어!! 게다가 나 지금 마구간 청소하러 가는거야. 정말 거기까지 따라오겠다는거야?"
"음? 마구간 청소?? 네가 왜 그런 일을 해! 그건 너와 어울리지 않아. 그건 다른 사람을 시킬테니, 넌 그냥 나랑 데이트라도..."
나는 답답한 마음에 걸음을 멈추고 청소도구를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점심 이후부터 계속 이런 식이었기에, 나는 평소 일과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꼴을 누가 볼까봐 성 밖을 나가기는 커녕, 아서의 방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뻔뻔하게 나에게 달라붙는 아서를 떼어놓으며, 어떻게든 구슬려 방에다 데려다 놓기 위해 다시 설득해 보려는 찰나, 복도 저편에서 모르가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우리 둘을 발견한 듯, 웃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온 몸에 핏기가 다 가시는 기분이었다.
"아서, 멀린. 둘이 여기서 뭐 해? 왠일로 이 시간에 둘이 한가롭게 같이 붙어있네?"
웃으며 물어오는 모르가나에게 뭐라도 변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서가 좀 더 빨랐다.
"여어, 모르가나. 왠일이 아니지. 멀린이랑 나는 사..... 읍!으읍!"
나는 필사적으로 아서의 입을 틀어막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와하하! 사...그래, 사냥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날씨가 참 좋길래-"
입이 틀어막혀 읍읍거리면서도 아서는 내 말에 과장된 '그게 뭔 헛소리야'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아,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애초에 기절이라도 시켜버릴 것을. 모르가나는 이 이상한 광경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후훗, 너네 오늘 좀 이상하다? 아서가 무슨 실수라도 했어? 하긴 넌 말 안하고 있는게 더 낫긴 하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모르가나를 아서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흘겨보더니, 아무말도 안 하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는 몸부림치던 것을 멈췄다. 나는 그 모습에 살짝 안심을 하고는 붙들고 있던 손의 힘을 무의식적으로 느슨하게 했다.
"그 그렇죠? 하하. 우리 왕자님이 그래도 겉보기엔 번듯하잖아. 그나저나 어디 가는 길이신가요, 마이 레이디?"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말을 가지러 가던 길이었어. 아, 그러고보니 아서, 네 말중에 전에 나 빌려줬던 갈색에... 순한 아이 있지? 걜 좀 빌려갈 수 있을까?"
아서가 대답을 할 차례였고, 주제도 이미 다른 것으로 넘어갔기에 나는 불안하지만 아서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아서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는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어짜피 오늘은 데리고 나갈 일 없으니까."
"와아! 고마워! 잠시만 빌려갔다가 다시 돌려 놓을게, 아서."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서를 보며 기뻐하는 모르가나의 모습에 나는 아까의 걱정도 잊은 채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아, 너희 사냥을 나갈꺼라고 했지? 그럼 너희 말을 준비할 때 내 준비도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오늘은 그웬도 없고, 준비할 손이 부족해서. 멀린, 괜찮겠어?"
나는 웃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제 기쁨입니다, 마이 레이디." 내 대답에 한층 화사한 미소를 지은 모르가나는 내 손을 잡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은 나까지도 즐겁게 했다. 그녀가 나와 같은 고민, 마법력과 그게 원인일거라 생각되는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 외로운 상황에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미소에는 예전과 같은 힘이 사라진것 같이 느껴졌었다. 숨막히는 박해와 몰이해 속에서, 그나마 이런 즐거움이라도 그녀를 웃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럼, 잠깐 가서 말을 꺼내주고 올게."
아서가 뭐라 말을 꺼낼새라, 나는 모르가나를 이끌고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다행히도 아서는 별 말이 없었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걸어갔다. 하지만 결국 몇 걸음 못 가, 따라온 아서에게 팔을 붙잡혔을 때엔 정말 심장이 발 근처까지 떨어지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말은 빌려줘도 멀린은 안돼, 모르가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서. 그에게 뭔가 다른 급한 일이라도 있어?"
"그냥 다른 사람을 시켜. 왜냐하면..."
나는 뒤늦게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고는 다시 아서의 입을 막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내 손을 피하고는 선언하듯이 말했다.
"멀린은 내 연인이니까! 그에게 그런 걸 시킬 수는 없어!"
아아, 그때의 모르가나의 표정이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다.
-
뒤늦게 아서를 때려눕히다시피 제압(?)하고는 모르가나를 이끌고 겨우 마굿간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나도 그녀도 별 말은 없었지만, 앞에 선 그녀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걸로 봐선 아마도 소리죽여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정말이지!!
말에 안장을 얹고 편자를 확인하고는 모르가나가 올라타는 걸 도왔다. 그리고 말 고삐를 쥐고 얼마간 밖으로 나왔을 때, 모르가나가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멀린! 너네, 둘이...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된거야?!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곤, 이 대화를 들을수 있을 만한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간신히 대답했다.
"맙소사, 아니에요. 모르가나. 절대 아니라구요!"
"아닌데 아서가 저렇게 당당히 말을 해? 왠-지 모르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 바보 아서가 그렇게까지 선언을 하다니!! 넌 정말 놀라운 아이야, 멀린."
이 이봐... 어디서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거야. 멀쩡했을때의 아서는 말 그대로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 그 자체였는데!
"으아아...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네. 어쨌든, 그냥 헛소리 들은거라 생각하세요. 쟤가 지금 상태가 좀 안 좋아서...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 그때 다시 물어보세요."
"그을쎄- 꽤나 멀쩡해 보였는데? 걱정하지마, 내가 비밀은 꼭 지켜줄게!"
"제발, 모르가나. 오해라고... 아니, 됐어요. 내일 제가 꼭 해명을 시킬 테니, 그럼 오해를 푸시겠죠."
한숨을 내쉬는 나를 모르가나는 따듯하게 웃으며 내려다봤다. 말의 갈기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던 그녀는 지나가듯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멀린, 사랑의 힘이란게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 거야. 처음엔 갈피를 못 잡게 제멋대로고 이상해 보여도, 결국 그건 올바른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지."
그래, 맞아요 모르가나. 정말 그렇게 되겠지. 아서의 심장이 향할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내가 아니니까, 내일이면 결국 제 자리를 찾아 가게 될거야. 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절 믿어봐요, 모르가나. 내일이면 알게 되실 거에요. 어쨌든간에! 금단의 사랑에 빠진 친구를 위해 비밀을 지켜주시겠다니, 당신은 정말 멋진 여자에요. 알고 있죠?"
그 말에 시원하게 웃고 난 모르가나는 대답했다.
"당연하지.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멀린. 너의 착한 마음씨와 진심은 꼭 보답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너의 비밀은 나에게서 언제나 안전하게 지켜질 거야. 약속해."
그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려서, 나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나를 향해 그녀는 생긋 웃어보이고는 말을 몰아 성 밖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