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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필연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는 것 가운데서 군림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영광들 중에서 배우의 영광이 가장 덧없는 것이다. 적어도 흔히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는 그렇게들 말한다. 그러나 영광이란 모두가 다 덧없는 것이다.
-모든 영광들 중에서 가장 속임수 없는 것은 몸소 살아가는 영광이다.
그러기에 배우는 무수한 영광, 스스로를 바치고 스스로 체험하는 영광을 선택했다. 모든 것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에서 최선의 결론을 끌어낸 것은 바로 배우다. 배우는 성공하든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하든가 할 뿐이다. 작가는 설사 인정을 못 받는다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작품이 증언해주리라고 믿는다. 배우는 기껏해야 우리들에게 한 장의 사진을 남겨놓을 뿐, 그의 모습, 동작과 침묵, 짧은 숨결 혹은 사랑의 숨소리는 전혀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가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이 살아나게 하고자 했던 그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무수히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 그의 것이 된 모습으로 그는 이제 세 시잔 후에 죽을 것이다. 그는 세 시간 동안에 한 예외적인 운명을 송두리째 실감하고 또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바,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 세 시간 동안에 그는 객석에서 구경하는 관객이 일생 동안 거쳐가는 출구 없는 길의 종착점까지 가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침묵마저도 귀에 들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어조를 높이고 부동 그 자체도 눈에 보이는 구경거리가 된다. 육체가 곧 왕이다.
-배우는 저 사슬에 묶인 영혼을 마술에서 풀어준다. 마침내 온갖 정념들이 그들의 무대 위로 쏟아져나온다.
여러 훌륭한 배우들이 있고, 우리 자신이 때로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는 걸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이건 정말 기막히게 들어맞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한줄한줄 읽어내려가며 나도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명쾌한 설명이라니!
다른 많은 묘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어쨌든 배우의 한 속성을 아름답게 표현해준건 확실하다.
내가 읽으며 떠올린 '한 장의 사진'은 콜린의 것이니까, 같이 붙여놔야지...
언젠간 꼭 콜린의 연극무대도 직접 보고 싶다.